임진강 물결이 반짝이는 5월은 한반도의 역사를 담은 임진강으로 가보자. 37번 국도를 따라 임진강변을 가다보면 파평면 장승배기로에 자리한 율곡수목원을 만날 수 있다. 2021년 6월에 정식 개원한 이곳은 임진강을 품은 채 봄의 생기를 한껏 머금고 있다.
싱그러움이 가득한 숲속 정원
37번 도로에서 빠져 나와 파평면 율곡리로 진입하면 율곡 수목원의 주차장이 먼저 보인다. 수목원 입구 계곡 사이에 설치한 주차장은 주말이면 차량이 가득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깊은 계곡이어서 인적이 한산했던 이곳이 이제는 파주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방문자센터에는 따스한 햇살이 나무 창틀을 통해 내부를 밝히고 있고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온 젊은이들로 작은 카페는 활기가 넘친다.
이 곳 입구의 안내판에는 “식물유전자원의 보전과 증식·전시를 위해 조성된 율곡수목원은 과거 1960년대 산림녹화사업으로 울창해진 시유림을 새롭게 탈바꿈시킨 곳”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안내판을 지나면 바로 산책로가 시작된다.
산책로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들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다. 입구에서 200m쯤 걸어가면 본격적인 수목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5월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초록빛 나무들 사이로 붉은 작약이 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이 햇살에 반짝이며 더욱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하고, 불두화는 수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7백여 종 8만여 그루의 나무와 5백여 종 22만여 포기의 초본류, 총 1,300여 종 30만여 본의 식물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수목원 안에는 ‘구도장원길’이라는 특별한 산책로가 있다. 율곡 이이가 12세에 진사시 초시에 장원 합격한 후, 9번이나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린 데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총 2,700m의 산책로는 5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나도밤나무 길에서는 어린 시절 호랑이에게 화를 당할 뻔했다는 율곡 선생의 이야기가, 자경문 길에서는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이라는 뜻의 자경문에 담긴 깨우침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격몽요결 길, 십만양병 길, 그리고 파주가 낳은 세 현인 –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의 우정 이야기를 담은 삼현수간 길까지. 단순한 산책이 아닌 역사와 철학적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정자 주변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집들도 몇 채 있어 자연 속에서 쉬어가기 좋다. 유아숲 체험원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수목원과 임진강 이야기
수목원 둘레길은 5km 길이의 트레킹 코스로, 완주하면 약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해발 170m 지점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임진강의 유려한 물줄기와 북한의 송악산, 그리고 율곡리 습지공원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임진강은 예로부터 ‘더덜나루’ 또는 ‘다달나루’라고 불리던 순우리말에서 한자로 표기되어 임진강이 되었다.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개성과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으며,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도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의주대로의 길목이다.
임진나루 근처에는 영조가 1755년에 설치한 임진진과 진서문의 흔적이 남아있다. 파평면 금파리 지역 임진강변 언덕에는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개성에 도읍할 당시 지었다는 이궁(離宮)의 터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임진강은 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수목원에서 멀지 않은 율곡습지공원은 임진강 범람시 유수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자연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5월의 율곡습지공원은 형형색색의 꽃들과 유채꽃, 청보리밭이 펼쳐져 봄 특유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넓고 평탄한 산책로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전통적인 초가집, 장승, 돌탑 등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 사진을 찍는 연인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이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날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의 진정한 힐링
파주의 율곡수목원과 그 주변은 도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내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조용하고 깔끔하게 조성된 숲길,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다양한 식물들, 그리고 임진강의 유구한 역사까지… 자연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곳은 5월의 나들이 장소로 더없이 완벽하다.
산림치유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어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가족숲, 치유숲, 엄마활력숲, 실버숲, 노르딕 워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파주 율곡수목원은 입장료도 주차료도 무료인데다, 인근에 율곡 이이 선생이 머물던 화석정에서 임강 건너 동파나루를 바라 볼 수 있는 역사적 명소이다. 북쪽으로는 임진강, 동쪽에는 파평산과 감악산이 있어 임진강 일대와 산자수려한 명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역사와 자연이 숨쉬는 율곡수목원에서의 하루는 일상에 지친 내 마음에 작은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인공적인 화려함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에서 진정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 5월에 가볼 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율곡수목원을 추천한다. 자연의 속삭임과 역사의 숨결이 함께하는 이곳에서 당신도 특별한 5월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 이기상
율곡수목원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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