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숙이 그리는 임진각 풍경

평화를 염원하는 종각의 울림

임진강역은 철로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경의선 마지막 역이다. 기차에서 내려 몇 걸음 걸어가면 가장 먼저 ‘새천년의장’을 만난다. 안광수의 조각작품 새천년의 장은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군상을 형상화하여 여기가 분단의 현장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임진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개발된 통일안보 관광지로 한국전쟁의 각종 유물과 크고 작은 30여 개의 전적기념물이 조성되었다. 초입에 ‘6·25전쟁 납북자기념관’과 철도 중단 지점을 알리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석만 보더라도, 임진강 주변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서부의 요충 임진강은 남북을 잇는 혈맥이요 관문이다. 여기서 개성까지는 22킬로, 차로 가면 이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임진각 관광지는 평일이나 주말 관계없이 단체나 가족 단위 관람객이 방문하면서 2024.11월에 천만 명을 넘어섰다.

임진각 3층 건물 전망대로 올라가면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과 15만여 평에 펼쳐진 대규모 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보던 학생들이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가 북한이냐’ 묻는다. 임진강 북쪽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자유롭게 갈 수는 없으나 북한 땅은 아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지 못한다. 간략하게 6·25전쟁과 그로 인해 생긴 민통선과 휴전선,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더니 처음 듣는 소리인 양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움이 머무는 곳

오늘도 이산가족은 망배단에서 제례를 올린다. 전쟁 이후 실향민들은 명절이면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 고향과 가까운 임진각에서 제례를 지냈는데, 이산가족 찾기 이후, 추모 제단 망배단이 만들어졌다. 정전 30년 되는 1983년 6월 30일, KBS에서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시작했다.

온 나라에는 이산가족 찾기 주제가 ‘잃어버린 30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흘러나왔고,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감격의 순간을 지켜보며 눈물을 찍어냈다. 그로부터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10,189명의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었고,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망배단 옆에는 ‘망향의 노래비’가 서 있다. 70년 세월이 지나 천만 이산가족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으나, 생이별의 피맺힌 노래 ‘잃어버린 30년’은 민족의 한이 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흘러나온다.

철마가 키운 뽕나무의 희망

망배단 뒤편에는 자유의 다리가 있다. 휴전협정이 성립되고 포로를 통과시키기 위해 급하게 만든 자유의 다리는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분단의 비극을 상징한다. 당시 북으로 끌려갔던 국군과 유엔군 포로 1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택했으며,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 21만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으로 돌아갔다.

경의선 철교는 원래 상·하행선 2개의 교량이 있었는데, 폭격으로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있던 것을 포로를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교각을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다리를 놓았다. 자유의 다리는 임시로 가설한 교량이라 예술적 가치는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다.

폭격으로 멈춰선 증기기관차는 비무장지대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방치되었다. 포스코의 지원으로 녹슨 때를 벗겨내고 보전처리를 하여 2009년 6월 25일, 임진각으로 옮겨 놓았다. 마지막 기관사 한준기씨의 증언에 의하면, 군수물자를 싣고 북진하던 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기차를 후진하여 장단역에 정차시켰다 한다.

이때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적이 기관차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연합군이 기관차를 향해 총탄을 난사했다. 천여 군데 총탄 자국과 휘어진 바퀴는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해준다.

민통선 철조망에는 통일의 간절한 소망을 적은 색색의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마음처럼 망연히 북쪽을 바라보는 기차는 ‘달리고 싶다 달리고 싶다’ 소리 없는 기적을 울린다.

기관차 화통 옆 뽕나무 한 그루에 관람객의 눈길이 쏠린다, 인간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때, 증기기관차는 만신창이 몸 부려놓고 한 점 씨앗 싹을 틔워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총탄 지나간 자리 햇살이 어루만지고 풀꽃 놀러와 화통 속에 뿌리내린 뽕나무 한 그루! 철책으로 갈라놓은 임진강 둔덕에서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고 여린 손을 흔든다. 염원으로 낳은 자식 온 겨레가 사랑하면 초록 잎 무성한 평화누리- 뽕나무 앞에 서면 비단길 달리는 기적소리 들린다.

아픔을 넘어 희망으로

두 번 다시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폐허로 만들며 아까운 생명을 앗아간다. 파주는 한반도의 허리 부분이다. 삼국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군사적 요충지인 임진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고,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으로 지금도 90.9%가 군사 보호지역이다.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종각 마당에는 전 세계 전쟁터의 돌을 전시했다. 64개국 86군데의 전쟁터에서 가져온 돌을 보고 있노라면 슬픈 눈동자로 ‘전쟁은 싫어요. 제발 싸움은 하지 말아요’ 애원하는 듯하다. 맞은편 평화의 종각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둥둥 종을 울린다.

고향을 북에 둔 이산가족이거나 참전용사들이 전장을 누비던 때를 떠올리며 타종을 하는지도 모른다. ‘평화의 종’은 새천년을 맞아 인류평화와 민족통일의 염원으로 만들어졌다. 6·25전쟁 중 16개국이 군사적 지원하고, 5개국이 병원선을 지원하였다.

21세기를 기념하여 21개의 나라에서 보내온 재료를 사용하여 무게 21톤의 종을 주조하여, 21세기를 맞는 첫날, 평화를 갈망하는 스물한 번의 종소리는 하늘과 땅에 울려 퍼졌다.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

참전비에 새겨진 글씨가 가슴에 와 박힌다. 비석에는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 걸고 조국을 지켰던 파주의 참전용사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파주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당시 파주는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며, 군인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열서너 살 어린 학생들까지 책 대신 총을 들고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겠노라 전력을 다했다. 동족상잔의 불을 뿜는 포화 속에서 결사 항쟁으로 적을 무찌르고 산화한 꽃다운 젊음이 그 얼마였던가, 경건한 마음으로 비문에 적힌 이름을 올려다본다.

3년이란 긴 싸움에서 수 없는 사람들은 피를 흘렸고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이렇게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조국의 이름 앞에 산화한 꽃다운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각 주변은 볼거리가 다양하다. 매년 가을이면 ‘인삼축제’와‘ 장단콩축제’가 열리는 임진각 큰 마당 주차장에는 오늘도 자동차가 가득 들어찼다.

새로 들어선 건물에는 최첨단 미래 기술이 집약된 생생누리 실감미디어 체험관이 있고, 파주 농특산물 홍보판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편의점, 식당, 빵집, 카페, 기념품점이 늘어선 그 앞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을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DMZ 안보관광 셔틀버스가 대기 중이다.

9시 20분부터 출발하는 버스는 주말에는 30분 간격, 평일은 1시간 간격으로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도라산역을 거쳐 통일촌을 돌아온다. 민통선과 비무장지대는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꼭 들러가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분단국가, 서울에서 겨우 52킬로 위치에 있는 제3땅굴과 남방한계선, 철책으로 둘러쳐진 비무장지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오늘도 줄을 잇는다.

하늘과 바람이 전하는 평화의 소망

철책선 밖으로 곤돌라가 줄줄이 임진강을 건넌다. 임진각 곤돌라는 2020년 4월부터 캐빈 26대가 임진각 관광지에서 민간인 통제구역인 캠프그리브스 간 850m를 순환 운행한다.

곤돌라를 타려면 반드시 신분증이 있어야 하며, 주차장 내에서 매표 후 탑승한다. 곤돌라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개성과 평양을 육로로 갈 수 있는 통일대교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도라산 가는 철교와 폭격으로 뼈만 남은 독개다리 교각이 보인다.

민족의 아픔을 안고 흘러가는 임진강과 초록 들판을 내려다보는 사이 캐빈은 DMZ 승강장에 닿는다. 관람객은 자유롭게 탐방로를 이용하여 제1 전망대와 캠프그리브스, 장단반도와 역사공원을 돌아보고 다시 임진각으로 돌아온다.

평화누리는 분단의 아픔이 아니라, 자유와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카페 안녕’ 복도를 지나 바람의 언덕에 오르면 2만여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이다.

자연 그대로 만든 대형 잔디 언덕에 앉아 통일의 염원을 담은 공연, 전시, 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행사를 즐길 수 있다. 멀리서도 보이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거대한 작품 ‘통일 부르기’는 통일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은 비록 대한민국이 반으로 나뉘어 분열과 대립으로 담을 쌓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통일을 이루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바람이 분다.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한민족의 땅, 대한민국 산천을 어루만지는 자유로운 바람은 모양도 색깔도 구별 않고 수천 개의 바람개비를 돌린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나지막하지만 강렬한 호소로 불고 있는 평화의 바람은 태풍이 되어 언젠가는 인간이 쌓은 두꺼운 장벽을 무너뜨리리라.

남과 북이 하나 되어 경의선 기차를 타고 개성 평양을 거쳐 유라시아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 파주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통한의 땅이 아니라 세계인이 주목하는 희망과 상생의 땅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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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의 유려함이 술술 읽혀지게 합니다. 내용은 어느정도 알고는 있지만 강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상황이 뚜렷하게 다가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즐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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