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점이 맞닿은 5월, 새싹들은 이제 짙은 녹음으로 물들고 따스한 햇살은 대지를 포근히 감싸안는다. 이 싱그러운 계절, 파주의 숨은 보물 혜음원지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고려시대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곳에서 역사의 향기를 느끼며 5월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보자.
산자락에 숨겨진 천년의 시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혜음령 고개 동쪽 능선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혜음원지는 고려 예종 17년(1122년)에 지어진 국립 숙박시설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사적 제464호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혜음원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었다. 혜음사라는 사찰,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인 원(院), 그리고 고려 왕의 남경 행차 시 머물렀던 행궁으로 이루어진 복합공간이었다. 특히 혜음령 일대는 인적이 드물고 도적떼가 많아 통행할 때 가장 위험한 구간으로, 백성의 안전을 보장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국왕의 명으로 세워진 곳이다.

옛 기록인 《동문선》의 「혜음사신창기」에 따르면, 이곳은 “깊은 숲 속이 깨끗한 집으로 변하였고 무섭던 길이 평탄대로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왕과 비가 백성들에게 무료급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식량을 지급하고 파손된 시설을 수선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혜음원은 왕실의 각별한 관심 아래 백성들의 편안한 여정을 돕는 사찰과 원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천년의 시간에 감추어진 혜음원지가 발견된 것은 1998.8.5일부터 서울 및 경기지방에 1,100㎜ 이상의 국지성 호우가 발생하면서 우암산에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다. 당시 광탄면 용미4리 윤석한 이장은 주민 몇 명과 함께 계곡 하천에서 석축을 복구하고 있었다. 복구 중에 흙더미에서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
이 우연한 발견이 천 년 전 고려 시대의 유적을 현대로 불러온 결정적 순간이었다. 윤 이장은 동네에서 동국대학교 문화재 관련 학과를 다니던 김경섭 대학생에게 이 기와를 보여주었고, 학생은 담당 교수에게 전달하면서 공식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자연의 섭리가 천 년간 묻혀 있던 역사의 보물을 우리에게 돌려준 순간이었다.
물과 돌이 빚어낸 고려의 건축미
5월의 푸른 신록 사이로 드러나는 혜음원지의 석축과 기단은 천 년 전 고려인들의 뛰어난 토목·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발굴 조사 결과 드러난 11단의 축대와 그 위에 세워진 건물터는 완만한 경사지에 한 단 한 단씩 조성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북동쪽 제일 상단 축대에 조성된 건물은 고려 궁궐인 만월대와 같이 중앙에 규모가 큰 건물이 있고 좌우에 약간 작은 건물이 대칭으로 놓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적절히 가두었다가 동서수로를 통해 물이 주변을 흐르도록 하면서 다시 남북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시스템이다. 그들은 물을 단순히 배수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낙수형(폭포처럼 떨어지는 물), 유수형(수평적으로 흐르는 물), 평정형(연못에 고인 물)의 세 가지 방식을 모두 활용하여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효과를 조화롭게 만들어냈다.
곳곳에 배치된 연못은 5월의 푸른 하늘을 담아내며, 건물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는 방안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렇게 물을 활용한 공간 구성은 무더운 여름을 대비한 자연 냉방 시스템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 1000년 전 고려인들의 지혜와 미적 감각이 오늘날 5월의 녹음과 어우러져 더욱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역사 속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
혜음원이 있는 혜음령 고개에는 오래된 전설도 전해진다. 욕심 많은 두 도적이 빼앗은 장물을 나누기로 했으나, 각자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마음에 서로를 해치려 했고 결국 둘 다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서로 상대의 몫을 인정했더라면 부족함 없이 살았을 터인데,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이 오히려 화가 되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혜음원지 주변은 또한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의 넋이 흔적을 남기며 다닐 수 있다면, 수천수만 번 님 계신 곳을 들락거려 그 돌길이 닳아서 모래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그녀의 구절은 혜음원을 찾는 여행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2017년 4월, 임천조씨 후손들은 사망 위치나 시기를 알 수 없는 옥봉을 기리고자 혜음원지 주변 임천조씨 묘역에 그녀의 묘비를 세웠다.
20여 년간의 발굴조사와 정비공사를 마치고 2021년에 개관한 혜음원지 방문자센터는 전시실, 영상실, 교육실, 다목적홀,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혜음원의 사계절과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2층에서는 용미리 마을의 유래와 파주 역사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방문자 센터 1층 로비에 앉아 창 밖으로 혜음원지를 바라보면, 5월의 싱그러운 녹음 속에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 펼쳐진다. 옥상에서는 하얀 자작나무와 푸른 혜음원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5월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가 된다.
싱그러움이 넘치는 혜음원지가 천년이 지난 우리 눈 앞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마을 이장과 동국대 학생의 관심과 호기심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혜음원지는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5월의 혜음원지는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혜음원은 백성들이 혜음령을 안전하게 넘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설립한 ‘국립호텔’이었다. 이는 나라를 운영하는 왕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선정(善政)의 사례였다.

5월의 싱그러움처럼, 나라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통치자의 소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역사의 장소가 바로 혜음원지다. 천 년 전 고려의 왕들이 백성을 위해 세운 이 시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공동체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한 배려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지금, 5월의 따스한 날씨 속에서 혜음원지를 거닐다 보면, 현대의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려시대 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들이 혜음령을 넘으며 느꼈을 안도감, 혜음원에 도착했을 때의 편안함, 그리고 다음 여정을 위해 이곳을 떠나며 가졌을 기대감까지.
5월, 혜음원지에서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진 이 아름다운 유산 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본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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