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 터에 세운 도라전망대
강근숙 파주작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할 당시 위도 38도 선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다.
서쪽은 38선보다 아래로 내려가 개성이 북한 땅이 되고, 동쪽은 38선 위로 그어져 북한이었던 고성의 일부, 노동당사와 김일성 별장이 남쪽에 편입되었다. 휴전선 총 길이는 248킬로이며 장벽도 철조망도 없다. 서에서 동으로 1,292개의 나무 말뚝이 박혀있는데, 남쪽은 한글과 영어, 북쪽은 한글과 중국어로 쓰여있다.
도라산 마루 도라전망대에 서면 북한 땅이 훤히 바라보인다. 원래 156미터에 있던 전망대는 낡고 비좁아 2018년 10월, 12미터 높은 곳에 최신형 건물로 새로 지었다.
지금의 전망대는 조선 시대 원거리 통신 수단이었던 도라봉수대가 있던 자리로, 지세가 군사적 요충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망대에서 군사분계선 거리는 1,5킬로이며, 개성공단은 6킬로, 개성시까지 15킬로밖에 되지 않는다. 가까이 보이는 역삼각형 사천강 지류 양쪽은 군사분계선으로, 왼쪽 산마루 북한군 212초소에서 1,635미터파 내려온 것이 바로 제3땅굴이다.
1974년 9월 귀순한 김부성의 제보로 발견된 이 땅굴은 지하 73미터로 아파트 25층 깊이다. 김일성은 1972년 9월 인민 무력회의에서 ‘하나의 땅굴이 10개의 원자폭탄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말했다. 땅굴에서 서울까지는 50여 킬로, 1시간 당 무장병력 3만 명이 침투할 수 있다니 얼마나 위협적인가.
도라전망대에는 날마다 내·외국인 관람객으로 붐빈다. 전방을 찾은 사람들은 민통선,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등 용어 분별이 어렵다 한다. 민통선은 민간인 통제구역 남방한계선 주변에는 군사시설이 설치되어 있기에 5~20킬로 지점까지는 민간인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였다.
민통선 내 주민들은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쳐 농사를 지으며 생활한다. 민통선 구역은 파주 전체 면적의 20,5%이며, 통일촌과 해마루촌 두 개의 마을이 있다.
휴전선의 정확한 명칭은 군사분계선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남쪽 2킬로는 남방한계선, 북쪽으로 2킬로는 북방한계선이라 하며, 그 가운데는 유사시 충돌을 막기 위해 군대 주둔이나 어떠한 군사시설도 설치하지 않았기에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라 한다.
비무장지대에는 6,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지만, 혹여 인간이 보이지 않는 이 선을 밟기라도 하는 날엔 총탄이 쏟아져 목숨이 날아간다. 관람객과 전망대 창가에 서서 군사분계선을 가늠한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하늘색 송전탑 3개는 남쪽이고, 색을 칠하지 않은 회색 송전탑은 북쪽’이라는 말에 휴전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란다.
전망대 앞쪽에 남방한계선을 전진 배치한 것은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 관람객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실제 남방한계선은 전망대 오르기 전, 초소를 지나 도로에 그어진 푸른 선이다.
한가한 시간 3층 옥상으로 올라간다. 북한의 산은 왼쪽에서부터 군장산과 천덕산, 덕물산, 진봉산, 송악산, 극락봉, 오관봉이 열두 폭 산수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수려한데, 갱 속에는 무서운 핵무기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군장산과 천덕산 아래 금암골에는 300세대 1,5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김일성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노동당사와 협동농장이 있다.
농사철에는 들에서 일하는 주민과 소달구지에 짐을 가득 싣고 가는 광경을 볼 수가 있다. 저 소는 혹시 1998년 6월 정주영이 통일대교를 건너 고향으로 간 소의 자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망원경을 돌린다. 덕수이씨 시조 이돈수 탄생지 덕물산이 있고, 임신한 여인이 누워있는 형세라서 좋은 기운이 가득하다는 488미터 송악산은 개성을 품었다. 오관봉 뒤편에는 황진이 생가가 있으며 앞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는데, 묘역에 관심이 많은 나는 봉분은 어떤 모양이고 묘표에는 뭐라고 새겼을까 자못 궁금하다.
개성공단은 124개의 기업 6,000여 명의 북측 근로자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평화도시였다. 2016년 2월 10일 정부는 어떤 이유로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했고, 2020년 6월 16일 김여정에 의해 남북공동연락소가 폭파되었다. 개성공단 조성부터 가동 중단하는 날까지 북한에 유입된 현금과 기업이 생산설비에 투자한 총액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가끔 도라전망대를 찾아 두고 온 사업체가 있는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함께 일하던 북한 주민들은 우리 민족이라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아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손끝도 야무져 두 번 손이 가지 않았고, 정이 많아 잘해주면 넉넉잖은 형편에도 음식을 만들어 보답했다며 눈물을 찍어낸다. 개성공단은 언제쯤 다시 가동할 수 있을까. 지금 정세로는 그날이 아득하다며 북쪽을 바라보는 어느 기업인의 하소연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비무장지대에는 자유의 마을 대성동과 북한의 기정동 두 개의 마을이 있다. 군사분계선에서 400미터 떨어진 대성동 마을에는 100미터 높이에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50여 세대 150여 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 초등학교 학생은 유치원생 포함 3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대성동은 비무장지대라서 주민들에게 혜택이 있으나 제약도 뒤따른다. 자녀가 결혼할 때 신부를 맞아들일 수는 있어도 사위를 맞을 수는 없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병역과 납세의무 면제되는 반면, 1년에 180일 이상을 거주해야 한다.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가보려 했으나, 대성동 마을은 이방인의 방문을 허락지 않았다.
북쪽의 기정동 마을은 대성동에서 1.8킬로 떨어졌다.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3백 명의 북한 노동자가 숙식했으나 지금은 비어있는 상태다. 멀리 보이는 인공기는 태극기보다 60미터나 높이 달았고, 무게는 300킬로나 되어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북 군인들이 서로 담배도 주고받고 인사도 나눴는데, 지금은 살벌해져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뭇짐승과 철새들만 자유롭다.
2008년 파주 해설사들 개성견학을 갔을 때,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서 일부러 말을 걸어보았다. 군인들의 경직된 모습과는 달리 수줍음도 많고 순수해 보이는 그들에게서 북한 주민은 적이 아니라 우리의 동족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북한이 훤히 바라보이는 도라전망대 해설을 하면서 우리 민족을 가로막고 있는 이념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한때 총부리를 맞대고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지만, 지난 아픔을 딛고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으나 베를린 장벽이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 듯,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단하게 쌓기만 하는 저 장벽도 무너지는 날이 있으리라. DMZ 일원 역사와 문화 생태관광 자원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남·북을 갈라놓은 철조망이 살아있는 기념물이 되어 세계인이 몰려오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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